경제논평

 

제가 《개혁의 정석》이란 책을 새로 냈습니다. 2년 전에 낸 재정전쟁》에 이어 두 번째 대중서입니다. 지금은 소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복지, 환경, 의료, 전략 산업 등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 필요한 큰 정부로 이행하는 대전환기입니다재정전쟁》은 이런 시대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국력을 기르기 위해 정부 재정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느냐를 제시한 책이 었지요.

이번에 출간한 개혁의 정석》은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현안인 개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입니다. 요즘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교육, 인구, 노동, 연금 등 인적자원 4대 분야에다 정부 역할과 관련된 조세개혁 및 정부개혁까지 더 해 총 6대 분야의 개혁을 다룹니다. 단순히 분야별 각론을 모아 놓은 책이 아닙니다정석》이라는 책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모든 개혁을 관통하는 핵심 변수와 성공 공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다음 이 틀에 기반해서 각 분야를 다루었습니다.  어찌 보면 매우 어렵고, 실험적인 시도입니다.


(개혁이 실패하는 이유 – 의지와 방법론)

개혁은 어렵습니다.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크겠지요. 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개혁할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을 한번 보십시오. 평소에는 세상을 다 바꿀것처럼 개혁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전으로 돌아오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 반발 때문이겠지요. 개혁의 혜택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지만 그 비용은 단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보통 개혁을 한다하면 찬성보다는 반대 여론이 많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당장의 지지율이나 선거 승리에 목을 메고 있는 정치 세력이 이런 손해 보는 싸움을 할리가 없지요. 대한민국이 지난 수십 년 개혁 같은 개혁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개혁이 실패하는 또 다른 이유는 확실한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알려고 해야 하는데 다들 안다고 착각을 하니까 문제를 못 푸는 것이지요. 개혁은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나 관행을 바꾸는 일입니다. 이게 쉽지가 않겠지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시스템이나 관행을 바꾸려 들면 저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개혁으로 손해 보는 사람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일, 개혁에 필요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 등 따져보아야 할 변수가 한 둘이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쉬운 정답은 없습니다. 개혁은 기존 제도의 구조적 틀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관행적인 사고나 수단으로는 진도를 나가기 어렵습니다. 일반 정책 수립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 봤자 멀리 못 갑니다.  

구체적으로, (1)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를 함께 따져야 하며, 패자에 대한 보상과 설득도 해야 합니다. (2) 장기적 비전과 과도기적 조치를 동시에 생각해야 하며, (3) 전면전을 펼지 아니면 이슈를 분할해 공격할지도 정해야 합니다. (4) 개혁 과제 간의 상호 연관성을 고려해 어떤 이슈를 먼저 공략할지에 대한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5) 나아가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일지, 다른 정파의 협력을 유도하며 정권을 이어가는 개혁을 할지도 사안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혁은 다차원의 종합 예술입니다. 이런 연립방정식을 풀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 없이 현실적 이해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개혁은 전문가 몇명이 밀실에 모여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정권을 잡았다고, 의회 다수석을 가졌다고 쉽게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충분히 고민해서 좋은 청사진을 만들고, 전략을 짜야 하고 이를 밀어붙일 정치적 동력을 구축해야 합니다.

 

(개혁의 세 가지 성공조건)

이 책에서는 개혁의 성공조건으로 ‘청사진, 여론 지지, 정치적 타협’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제시합니다. 이들이 어느 정도 순차적인 인과관계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혁의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이 세 측면을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사진에는 개혁의 내용뿐 아니라 전략도 포함되어야 하고, 우호 여론을 얻으려면 전문가적 식견과 정치적 전략을 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혁의 성과는 시간을 두고 나타나지만 그 비용은 지금 치러야 하기 때문에 다수 여론의 지지가 없으면 개혁 진도를 나가기 어렵습니다.


(중도층 공략과 헤어질 결심)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선거와 개혁의 차이점입니다. 선거는 고유 지지층에서 출발해 중도층을 공략하는 것이 통상적인 전략이지만, 개혁은 처음부타 중도층을 중심으로 한 우호 여론 조성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개혁 법안 통과에 필요한 정치적 타협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혁에 진심인 위정자라면 때로는 정파적 고정관념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의 핵심지지층과도 결별할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 주제는 나중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개혁의 숨은 적들)

이 책에서는 개혁의 걸림돌로 눈에 보이는 기득권 세력이 다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어쩌면 변화를 가로막는 보다 심각한 장애물은 장막 뒤에 숨어 있는 암묵적인 기득권 세력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개혁의 숨은 적들로 ‘정치인의 포퓰리즘’, ‘관료의 경직성’ 그리고 ‘전문가의 고정관념’을 적시합니다. 앞의 두 가지야 어느 정도 수긍이가는 얘기겠지만, 전문가의 고정관념이 개혁의 숨은 장애물이라는 것은 생소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개혁이 잘되라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개혁의 걸림돌로 ‘기득권의 고착화’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사고의 고착화’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개혁의 골든 타임은 정권 초기’라는 식의 무기력한 태도, ‘개혁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식의 현실성 없는 얘기, ‘보수의 개혁은 감세가 필수다’라는 시대흐름을 거스르는 주장 등 현실적 도움이 되지 않는 고정관념을 퍼나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개혁의 방법론을 내세우니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지요.


(개혁의 동력 - 재정의 힘과 시장의 힘)

이 책은 정체된 대한민국의 개혁 전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핵심 동력으로 재정의 힘시장의 힘을 제시합니다. 구조적 변화가 있으면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 마련입니다. 손해 보는 집단이 소수라도 저항의 강도가 크다면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대다수가 혜택을 보는 개혁이라도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연금개혁이나 조세개혁처럼 국민 다수가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개혁안을 꺼내기도 힘들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첫 번째 방안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해 제도 개혁을 위한 정치적 타협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기존 논쟁에 빠져있는 조세개혁을 강조하는 것도 재원이 있어야 개혁 동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산에는 제약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적절한 유인 체계를 만들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게 하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즉 시장의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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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책의 각론인 6대 개혁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교육개혁: 교육 전면전을 위한 백지 청사진)

가수 싸이와 유승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둘 다 병역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는 점이 같습니다. 그런데 싸이는 군대 두 번 다녀와서 잘 나가고 있는데, 유승준은 아직도 한반도에 발을 디디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싸이는 ‘병역법’을 어겼고, 유승준은 헌법보다도 무섭다는 ‘국민정서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이제 총체적인 시스템 실패를 겪고 있는 교육 분야를 보지요.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계층 갈등의 요인인 사교육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으려 합니다. 거의 전 국민이 이해당사자가 되는 입시 문제를 잘못 언급했다가 국민정서법에 걸리면 약도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수능이나 내신 성적으로 랭킹이 매겨진 학생들이 미리 정해진 대학 서열 순으로 배치되는 현 체제가 초래하는 불공평과 비효율, 부패와 낭비는 눈에 보이는 사교육비 액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납니다. 이처럼 사교육이 문제의 핵심이라면 이 자체를 공략할 수 있는 해법이 나와야 합니다. 공교육 제도 개편한다고 사교육이 줄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사교육의 핵심 특성인 정보 산업기능과 문제풀이 우월성에 초점을 둔 정면대결형 대안을 제시합니다. 사교육 시장의 비생산적 지대를 최대한 줄이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의 기능을 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구체화하려면 교실에서 상대평가를 몰아내고, 수능은 자격 시험으로 바꾸며, 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라고 보고, 이런 대안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율과 특성화가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인구개혁: 초강력 유인으로 출산 모멘텀 바꿔야)

다들 낮은 출산율을 걱정하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제 나름의 해법을 수업 시간에 얘기하곤 했습니다. “둘째를 낳으면 첫째의 수능점수를 10점 올려주면, 바로 반응이 올 것입니다. 둘째가 걱정되면 셋째를 낳으면 되고, 그다음 넷째, 다섯째... 순식간에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 때의 자녀 숫자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막내가 나는 어떡하냐고 나서면 입양하면 됩니다. 한국이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 중 하나라는 오명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의미겠지요.

인구 문제의 경우 출산율이 낮은 것도 걱정이지만 그 하락 추세가 심각하게 빠른 데다 다들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냥 ~하다가 인구 고령화가 고착화되면 이로 인한 생산력 저하와 재정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저출산 예산으로 쓴 수 백조 원이 왜 낭비였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이 책에서는 한편으로 출산 모멘텀의 획기적 반전을 위해 한시적으로 정책 자원을 몇몇 대안에 집중하고, 다른 한편으로 결혼 및 출산 문화를 바꿀 구조적 제도 변화를 모색하는 이원화 정책을 제안합니다. 또한, 노인 기준 연령을 올리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 소득도 올리고 세금도 더 내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인구 대책 중 하나라 봅니다. 이민의 경우 급격한 변화보다는 우리 여건에 비추어 필요한 분야부터 공략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최선일 것입니다. 생산인력의 부족은 사장되고 있는 여성 인력의 활용을 통해서도 부분적으로 메울 수 있다고 봅니다.

 

(노동개혁: 이념 대립 대신 선택적 접근)

개혁도 ‘적’이 분명한 일종의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제 중 가장 확실하게 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노동 분야입니다. 아무리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이 나와도 여차하면 보수 대 진보라는 이념 전쟁으로 비화합니다. 그리고 그 전면에 대기업과 대형 노조라는 선봉장이 있지요.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형평이 늘상 충돌하는 것도 아닌데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보수의 주장과 ‘노동자 권익 보호’라는 진보의 입장이 왜 섞이지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이유는 딱 하나, ‘적’의 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동개혁의 진짜 적은 그것이 누구건 부당한 지대 rent를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지대는 경쟁시장에서 얻을 수있는 정상이윤보다 높은 초과이윤을 의미하는데, 대기업의 경우 그들이 창출하는 고수익이 정경유착이나 독과점 덕분인지 기술혁신의 결과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경우도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성과를 내는데도 정규직 여부나 노조 보호막 덕분에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면 이 또한 일종의 지대라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정당한 노력의 결실로 남들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당연히 장려할 일입니다. 그러나 카르텔화된 정치적 힘을 사용해 얻는 지대는 갈등의 소지가 됩니다. 실효성 있는 노동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대 집단이 아닌 중간 계층, 즉 일반 노동자의 대표성을 높이는 노동 거버넌스 정립이 필요합니다. 또한, 불필요한 이념 대립을 피해가려면 사안을 나누어 공략하는 ‘분할 정복 divide and conquer’이 합당한 전술이라고 보며, 신기술이나 외국인투자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의 유입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연금개혁: 세대 간 이타주의에 기반한 정치적 해법)

최근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연금개혁 문제를 살펴보지요. 우선 예 하나를 들겠습니다.  엄마가 알아서 나눠 쓰라고 준 용돈 10만원을 놓고 두 자매가 싸우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먼저 태어나 엄마 잔소리를 더 듣고 자랐으므로 그 고통을 보전하는 의미에서 6만원을 갖겠다고 합니다. 둘째의 입장은 다릅니다. 언니는 늘 새 옷만 입고 자랐지만 자신은 언니에게 물려 받은 옷이 절반이므로 자신이 6만원을 받는 것이 분배 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합니다. 난감해진 엄마는 두 딸의 화합을 위해 2만원을 더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현금보다 더 좋은 정치적 타협안도 드뭅니다. 물론 엄마도 2만원을 어디에선가 구해와야 한다는 문제가 남습니다. 저는 연금개혁도 이렇게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 ‘덜 내고, 더 받았으니’ 앞으로는 ‘더 내고 덜 받거나, 아니면 좀 나중에 받아라’ 식의 기존 공식은 정치적 저항을 넘어서기 어렵고 세대 갈등만 부추길 뿐입니다. 특히, 청년 세대 입장에서는 이미 혜택을 충분히 누린 세대가 더 많은 부담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기 쉽습니다. / 사실 세대 간 형평성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대안도 연금 보험료 인상이라는 일차적 관문을 돌파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 경제논리에 입각해 연금 재정의 안정성에만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는 진도를 나가기 어렵습니다. 대신 한 번에 하나씩, 우선순위를 정해 정치적 장애물들을 돌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 책에서는 가장 핵심 과제인 보험료 인상을 실현시킬 대안으로서 세대 간 이타주의에 바탕을 둔 200조 원가량의 ‘세대통합기금’ 조성과 그 재원 대안을 제시합니다. 매우 실험적인 제안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식의 발상의 전환 없이는 연금개혁의 첫발을 떼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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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개혁: 개혁 동력을 위한 재원 확보)

그동안의 개혁 논쟁을 보면 제도 개혁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줄 재원 확보입니다. 실현 가능한 개혁 플랜은 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구조 개혁으로 인한 손실에 대한 보상, 갈등의 정치적 타협을 위한 재원, 행동 유인을 바꾸기 위한 예산 지원 등 앞서 언급한 4대 개혁에 소요되는 예산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시장주의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 부각되는 큰 정부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는 전환기입니다. 가뜩이나 재정 압박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 재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개혁의 동력이 되어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수 증가가 불가피한데, 정부 신뢰도가 높지 않으면 약간의 증세도 저항의 벽에 부딪치기 쉽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신뢰도는 어떨까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에서 다루는 6대 개혁 중 납세자를 설득해가며 조세부담률을 높이는 일이 가장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연금과 같이 세대 갈등의 소지가 있는 문제를 해결할 재원 마련 방안을 포함, 납세자의 추가 부담을 최소화하며 세수를 늘릴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정부개혁: 개혁의 주체이자 대상)

마지막 주제인 정부개혁은 정말 어렵습니다.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하는 집단이 개혁의 대상이라면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라는 문제가 남지요. 그래서인지 정치 9단인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당시 예정된 4대 개혁 중 기업ž금융ž노동 문제에만 집중하고 정부개혁은 쏙 빼놓고 일을 했습니다. 역대 정부 중 가장 다양한 개혁 과제를 설정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후반에 가면 관료 집단에 포획되어 간다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정부개혁은 보수 정부가 나설 법한 과제인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도 별 얘기가 없습니다. 대신, 혹독하게 더웠던 2023년의 여름은 1,000억 원이 넘는 공금을 애매하게 사용한 ‘새만금 잼버리’의 부실에다 철근을 빼먹고 지었다는 ‘순살 아파트’의 부패 현장까지 노출되며 짜증을 더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 대한민국의 부패 랭킹은 탄자니아나 수리남과 큰 차이가 없었지요. 예전 같은 노골적인 정경유착은 사라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패 고리는 더 끈끈해졌습니다. 이 책은 관료의 일탈을 견제할 수 있는 규제개혁이 정부개혁의 일차 과제라고 봅니다. 나아가 복지지출의 증가로 상징되는 큰 정부 시대에서 포퓰리즘을 배격하고 건전 재정을 유지하는 방안도 따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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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6대 개혁의 핵심 쟁점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물론 저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그 배경에는 우리 사회를 보는 일반인의 상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말로만 개혁을 부르짖는 정치인, 관료, 전문가들이 상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인보다 뭐가 더 나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앞서도 강조했지만 기득권의 고착화 못지않게 개혁을 저해하는 것이 사고의 고착화, 고정관념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연금, 교육, 노동, 인구 문제 등은 복잡한 연립방정식을 푸는 일이라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일수록 정석대로 가야합니다.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6개 분야를 나열식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모든 개혁을 관통하는 성공 공식을 잡아내려 했습니다. 개혁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실용적 관점에서 다룰 수 있는 체계적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혁은 비전이자 동시에 현실입니다. 아무쪼록 저의 소소한 상상력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개혁 논쟁에 의미있는 양념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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